조선 4대 왕 세종 :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

조선 4대 왕 세종 :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

한국 사람들에게 조선 왕 중에서 어느 왕을 가장 존경하냐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 세종대왕을 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종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한글창제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나랏 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어 한글이 왜 만들어졌고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또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조선의 백성들은 나라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여전히 고려의 사상과 정신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을 바꾸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500년 가량 한글의 원리에 대해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가 1940년 일본 식민지 시절에 경상북도 안동의 어느 한 집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덕분에 한글의 원리와 만든 이유 등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한글로 써서 최초로 발행한 책은 <용비어천가>이며 이는 한글로 지은 장편 시로서 조선의 위엄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한글은 지혜로운 사람을 하루가 끝나기도 전에 깨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열흘이면 배울 수 있을만큼 쉬운 글자라고 당시 예조 판서였던 정인지는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훈민정음은 뜻 그대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로서 유교의 가르침을 익히게 하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은 유교사상을 잘 몰랐고 그에 따라 세종은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유교사상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한글을 만들기도 했던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이 글자도 모르는 상태로 지낸다면 오히려 나라를 다시리는 왕이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백성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민심을 얻기위해 창제하였던 것이기도 합니다.

즉 백성만을 위한 한글이 아니라 왕과 정치를 위해서도 필요한 수단이었던 것이지요.

백성들이 한자를 모두 배운다는 것은 너무 어렵기도 했고 조선시대 당시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도 한자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백성들도 모두 한자를 알게 된다면 양반과 상민의 계층이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글 – 여성들의 글자

저도 학교 다니면서 배운 역사 교과서에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공동작업으로 한글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세종이 만든 한글을 집현전 학자들은 책을 만들면서부터 참여한 것이 사실인데요. 이 또한 집현전 학자들은 새로운 글자인 한글을 만드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고, 이를 반대한 신하들은 모두 감옥에 가두거나 벼슬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한글은 집현전 학자들 중에서도 젊고 벼슬이 낮은 신하들만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종은 이처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완성시켰으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행되고 4년 후 세상을 떠나면서 한글은 당시에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조선의 국가 공식문서나 개인의 토지 문서 등 오늘날의 공문서와 같은 서류들은 모두 한자로 작성해야 효력이 발생했습니다.

그 후 쓰기 쉬운 한글은 여성들이 주로 주고받는 편지나 일기로만 쓰일 뿐이었습니다. 학자나 왕들도 딸이나 아내에게 쓰는 편지에만 한자 대신 한글을 사용했다고 하니 한글의 위상이 오늘 날처럼 높지는 않았나봅니다.

조선 14대 왕 선조의 왕비인 인목왕후가 쓴 편지에는 한자와 훈민정음이 병용되어 있으며 이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송시열이나 김정희와 같은 저명한 학자들도 평소에는 한자를 사용하다가 아내나 딸에게 편지를 쓸 때만은 꼭 한글로 썼다고 하니 여성들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한글을 보존하고 발전시킨 여성들이 아니었다면 한글은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영화 ‘군도’ – 한글 몰라 서러운 백성

저는 얼마전 조선 후기 배경의 ‘군도’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당시 탐관오리들은 한자의 뜻을 모르던 백성들에게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는 등의 악덕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모두 글을 몰라 막대한 재산을 빼앗기는 억울한 사건이었는데요. 백성들이 한글을 알았다면 그토록 억울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겠지요.

한글은 세종이 살아있던 시기인 조선 초기와 중기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여성들의 편지글이나 일기처럼 차츰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벽보를 한글로 써서 붙이거나 한글 소설을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즉 백성을 위해 만든 한글을 백성들이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던 거지요. 한글이 제대로 대접받게 된 것은 대략 한글이 만들어지고 400년이 지난 후, 19세기 말인 조선시대가 거의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야 국문, 즉 국가의 문자로 인정받으면서 공문서에 한자와 병행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글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더욱 열렬히 깨우치게 된 것은 일제시대입니다. 훈민정음을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칭하게 된 것과 조선어학회가 한글날을 제정하게 되면서 더욱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조선어 학회는 훈민정음 반포일을 <한글날>이라고 1928년에 지정하였습니다.

 

결론

일제 식민지라는 억압 아래에서 더욱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 한글의 위대함을 오늘날의 후손들은 잊지 않고 올바르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와 음악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영어권이나 유럽에서도 한글을 배우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니 새삼 뿌듯한 마음까지 생깁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유아기 아이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데요. 자랑스러운 한글을 먼저 익히면서 올바른 생각을 심어줄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앞장서서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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